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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솔나무 “제 연주 통해 하나님 만나길” > 추천새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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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솔나무 “제 연주 통해 하나님 만나길”

조성호 기자

작성일2021-03-08 16:07 237 읽음

선교사 후원 위해 만든 곡으로 싱글 ‘My Hero’ 발매

 

한류 드라마 ‘허준’ ‘이산’ ‘동이’ OST의 메인 연주자이면서 작곡가인, 플루티스트 송솔나무 씨가 최근 싱글앨범 ‘My Hero’를 발매했다. 이슬람 권 선교사들을 위한 헌금 홍보영상의 플룻 연주 3곡을 담은 앨범이다. 코로나19 전까지 114개국을 다니며 세계적인 플루티스트로 연주해왔던 송솔나무 씨를 서면으로 만나봤다.

 

-최근에 ‘My Hero’ 앨범을 발매하셨는데요. 앨범과 수록곡 ‘그 언덕’ ‘나의 영웅’ ‘Saved’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번 자작곡 ‘나의 영웅’ 외 2곡은 선교사님들을 위한 후원영상 제작 중 만들었던 음원입니다. ‘그 언덕’이란 곡은 힘들고 외롭고 고통스러워도 끝까지 그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곡입니다. ‘나의 영웅’은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힘들어 하고 있는 이 상황에도 현지에 끝까지 남아 이웃을 위로하고 복음을 전하는 모든 선교사님들이 이 시대에의영웅이라 생각해 작곡한 곡입니다. ‘Saved’는 구원받은 우리가 천국에 올라갈 때를 상상하며 작곡했습니다. 이 곡의 모든 편곡은 ‘행복’ 외 수 많은 주옥 같은 곡들을 작곡한 손경민 목사가 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아티스트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송솔나무 님도 힘드실 것 같은데요.

 

“실은 저 역시 연주활동을 거의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집에서 연주 영상을 만들어 해외에 있는 교회 등 많은 곳에 무료로 보내고 있고, 최근에는 송솔나무 유튜브를 통해 무료로 휘슬 레슨과 연주들을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습니다.” 

 

-기독교인 플루티스트로서 그동안 받은 은혜가 있다면, 나눠주세요.

 

“어릴 적 제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나 힘든 가운데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사업이 어려워지자 저와 누님, 그리고 어머니를 미국에 계신 친척에게 보냈습니다. 한국 상황이 좋아지면 돌아올 계획으로 갔지만, 아버지께서 다시 사업을 일으키시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그래서 비자를 받기 위해 학교를 알아보다가 재능이 있는 누나를 줄리어드 예비학교에 보내려고 했습니다. 저는 당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화장실에 숨어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어느날 밴드부에서 플룻 소리를 듣게 되면서 플룻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하나님의 연주자’라는 책에 담았습니다.

 

짧게 말씀을 드리면 저는 친구 하나 없던 왕따 학생이었고 집에서도 늘 문제아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이 있다는 사실을 교회에서 들었고 그 누구도 의지할 사람이 없었던 저는 그저 하나님께만 매달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몇 십 만원 대의 초보자 악기로 연습한 모짜르트 콘체르토로 줄리어드 예비학교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당시 플룻 분야에서 2명을 뽑았는데 그 중에 제가 뽑혀 장학금을 받고 입학을 했었습니다. 그 후 유진박 어머니의 도움으로 카네기홀에서 연주도 하고 매년 링컨센터에서 연주를 할 수 있었습니다.”

 

-송솔나무 님은 연주자로서 최악의 조건을 가지셨다고요?

 

“네. 저는 일반인들보다 새끼 손가락이 한 마디가 짧고 알레르기성 천식에다 심장질환까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단점들이 저의 장점이 되었습니다.”

 

-연주에 사용하는 플룻도 여러 종류를 사용하신다고 들었어요. 나무로 된 것이 가장 인기라고 하는데요.

 

“네. 맞습니다. 보통 연주 때 6가지 다른 악기로 연주를 하는데 제일 비싼 것은 거의 집값만큼 나가기도 하지만, 늘 하이라이트로 연주하는 악기는 싸고 고장난 휘슬이라는 악기입니다. 저는 늘 이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악기의 값이 아닌 그 악기가 누구의 손에 들려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연주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찾고 하나님을 만나기를 소원합니다.”

 

-코로나 전까지 전세계를 돌면서 연주를 통해 복음을 전해 오셨는데요.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요?

 

“저는 지금까지 전 세계 114개국에서 연주했습니다. 모든 곳이 기억에 남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가장 힘들었던 지역들입니다. 만약 여행으로 갔다면 아름답고 즐거운 곳이었겠지만 하나님의 연주자로서 힘들었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크게 있었던 곳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중에서 너무나도 많은 순교자를 냈었던 인도의 오리사 마을이라든지 남부 수단이나 우간다의 소년병들이 있었던 지역에서 했던 연주가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지금도 100명 미만의 교회에선 사례비를 안 받으시나요?

 

“제가 100명 미만의 교회에선 사례비를 안 받는다는 것을 이제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고, 연주의 대부분을 100명 미만의 교회에서 하게 되다보니 지금은 50명 미만으로 기준을 조금 더 높였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100명 미만 교회에선 형편대로 맛있는 김치 같은 반찬으로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정식 사례비는 300명 이상부터 받고, 1만명까지라도 동일한 사례비를 받습니다. 제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후배들을 위한 질서 때문입니다. 지금은 코로나19 사태로 이런 룰 자체를 적용하기는 힘들어진 것 같습니다. 지금은 크든 작든 모두 힘들 때니까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로 4년 넘게 일본 사역을 하셨는데요. 쓰나미 이재민들을 위한 연주를하셨다고요?

 

“일본 사역은 아직도 진행중이고 일본에 아직도 저희 집이 그대로 있습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쓰나미 소식을 전해 듣고 6일 뒤인 3월 17일, 기업의 도움으로 일본에 들어가 후쿠시마 지역에서 구호물품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제가 OST를 연주했던 드라마 ‘이산’이 피난소 티비에 방송이 되고 있었고 그 일을 주선했던 교회 선교사님께서 제가 연주자라고 소개하시는 바람에 그곳에 있는 분들이 제게 연주를 부탁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70번을 넘게 일본에 가서 이재민들을 위한 위로 콘서트를 하며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그 후 아예 일본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송솔나무님이 신앙을 갖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나요?

 

“저희 집은 3대째 크리스천 가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것은 만 18세 때였습니다. 신앙인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연주자로 살게 된 것은 28세부터였습니다. 하나님은 제 삶의 시작이고 종착지입니다. 성령충만하다면 실은 매일이 기적이고 은혜입니다.”

 

-송솔나무님이 자주 듣는 찬양과 좋아하는 아티스트, 그리고 마음에 새기고 있는 성구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제가 좋아하는 찬송가는 ‘참 아름다워라’ ‘오 신실하신주’입니다. 대중 아티스트로는 첼리스트 요요마 선생님을 좋아하고요. 크리스천 아티스트라면 누가 되었든 성령 충만한 연주자가 제게는 최고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이 제게는 최고의 말씀이고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나누주세요.

 

“계획은 늘 없습니다. 그분께서 시키시는 일만 하는 자의 삶으로 결심했기 때문이지요. 다만, 기도 제목이 하나 있습니다. 변질되기 전에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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